[베이징 2008] 괴물 류현진 완봉쇼…캐나다 잡고 2연승
라이언 래드마노비치의 타구가 한국 중견수 이종욱(두산)의 글러브에 들어가는 순간. 한국 선수들이 마운드로 달려갔다. 고졸 3년차 좌완 '괴물' 류현진(21.한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홀로 마운드를 지킨 에이스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다. 15일 캐나다전은 4강 진출의 분수령이었다. 더구나 상대는 지난 3월 대만에서 벌어진 올림픽 최종예선서 자신에게 패전(1.2이닝 3피안타 3실점)을 안겼던 캐나다. 트리플크라운(2006년)을 기록할 만큼 한국에서 구위는 검증됐지만 '국제대회(1승1패 평균자책점 5.71)에서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류현진이었다. 하지만 징크스는 '괴물'의 승부욕을 오히려 자극했다. 류현진의 자존심은 마운드 위에서 '묵직한 구위'로 발현됐다. 3회초 정근우의 좌월 솔로포 이후 대표팀 타선은 7회 무사 1.2루 기회를 놓치는 등 아쉬운 장면이 이어졌다. 하지만 류현진은 흔들림 없이 무실점 행진을 이어갔다. 든든한 에이스의 모습에 김경문 대표팀 감독도 신뢰를 보냈다. 8회말 선두타자 크리스 로빈슨에게 안타를 허용한 뒤 1사 2루 2사 3루로 위기가 계속됐지만 교체 사인은 없었다. 김 감독의 믿음과 류현진의 보답은 9회말 명장면을 만들어냈다. 류현진은 마이크 사운더스에게 좌전안타를 허용했다. 스캇 소우만을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냈지만 닉 왜그라츠에게 1-2간을 꿰뚫는 안타를 맞아 상황은 1사 1.3루. 하지만 투수교체는 없었다. 김 감독은 에이스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줬고 류현진은 브렛 로리를 우익수 플라이로 처리한데 이어 2사 만루서도 라이언 래드마노비치를 중견수 플라이로 처리하며 1-0 승리를 확정짓는 27번째 아웃카운트를 잡아냈다. 9이닝 5피안타 무실점 6탈삼진의 완봉승. 류현진은 자신에게 국제대회 첫 패배를 안긴 캐나다에 완벽하게 설욕했다. 한국은 대회 2승으로 쿠바(3승)와 함께 선두에 오르며 4강 진출 가능성을 한층 높였다. "10경기 치른 것 같아" ▶김경문 한국 감독=한 10경기는 치른 것 같다. 너무 힘들다.(웃음) 한 점 차 승부였기에 윤석민이나 정대현 등 다른 투수를 낼 경우 너무 부담을 줄 것 같아 류현진에게 끝까지 맡겼다. 류현진은 오늘 컨디션이 너무 좋아 무조건 완투를 시키려고 마음먹었었다. 중심 타자들이 부진한 것은 부담감 때문이라고 본다. 내가 덕아웃에서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타격코치와 상의해 타순 변경 여부를 고심해 보겠다. 캐나다전이 고비였는데 이겨서 내일 일본전은 편안하게 할 수 있겠다. 선발 중간을 모두 투입해 반드시 이기도록 하겠다. "변화구 승부 주효" ▶류현진=3월 캐나다전에서는 직구 승부에서 많이 맞은 탓에 오늘은 슬라이더와 체인지업 등 변화구 위주로 투구했다. 9회 말 위기를 무실점으로 잘 넘겨 너무 기분이 좋다. 승리요인1 작은 거인들 화력과 빠른 발 한국 야구의 ‘작은 고추들’이 매운 맛을 톡톡히 선보이고 있다. 정근우(172cm)· 이종욱(176cm)·이용규(175cm)는 대표팀의 작은 거인들. 이들이 방망이와 발로 대표팀 연승행진을 이끌고 있다. 정근우는 캐나다전에서 펄펄 날았다. 3번 타자 겸 2루수로 선발 출장, 4타수 2안타(1홈런) 1타점으로 승리의 주역이 됐다. 중국전에 이어 쾌조의 타격감을 이어가고 있는 정근우는 미국전에서도 6-7로 지고 있던 9회 대타로 나서 2루타를 때려내며 동점 득점을 기록하는 영양가 높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정근우와 함께 이종욱과 이용규는 테이블세터진을 꾸리며 매서운 방망이 솜씨와 함께 특유의 ‘발야구’를 마음껏 선보이고 있다. 첫 경기 미국전에서 이종욱과 이용규는 7타수 4안타 3득점 2타점을 합작 했다. 특히 이종욱은 7-7로 맞서던 9회 1사 3루에서 끝내기 중견수 희생플라이로 결승타점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이들의 활약은 중심 타선의 침묵과 비교되고 있다. 이승엽-김동주-이대호로 이어지는 중심타선은 미국전 12타수 3안타(1홈런) 3타점 2득점을 기록하며 제몫을 하는 듯했으나 중국전 빈공에 이어 캐나다전에서도 8타수 무안타로 체면을 구겼다. 승리요인2 외야진들의 철벽 수비 완봉 역투한 류현진의 어깨를 편안하게 만들어준 외야진의 철벽 수비도 큰 힘을 보탰다. 좌익수 이용규는 2회말 선두타자 웰글라스의 왼쪽 파울볼을 잡아냈다. 담장쪽으로 휘어가는 볼을 끝까지 전력질주, 잡아냈다. 선두 타자를 처리해줘 류현진의 어깨를 가볍게 해줬다. 중견수 이종욱의 호수비도 뛰어났다. 4회 1사 후 소우맨의 빗맞은 중전안타성 타구를 다이빙캐치 해냈다. 주자가 나가면 대량실점으로 연결될 수 있었는데 원천봉쇄한 것이다. 특히 이종욱의 호수비는 결정적으로 류현진이 중반 이후 자신있게 볼을 던질 수 있는 발판이었다. 이것을 계기로 류현진은 빠르고 낮은 패스트볼과 변화구 등을 완벽에 가깝게 던지며 캐나다 타선을 압도했다. 우익수 이진영은 9회말 1사 1, 3루에서 로리의 플라이 때 정확한 홈송구로 3루 주자의 홈인을 막았다. 캐나다 3루주자 사운더스는 이진영의 어깨를 의식하고 온 더 베이스를 하지 못했다. 2006년 WBC 대회에서 기가 막힌 두 번의 다이빙캐치를 통해 국민 우익수라는 호칭을 들었던 명성이 재확인된 순간이었다. 수비 폭이 넓은 외야진이 한국 2연승의 또다른 힘이 되고 있다.